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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낭만적 기대나, 성적인 유혹이 아니오.
그녀의 곁에서 느껴지는 삶의 체취가
마치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같고, 사랑한 친구 같소.
그렇게 사는 모습이 좋아, 아름답게 느껴지는 마음이 좋아 사랑할 뿐.

내가 그녀를 찾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외모를 보거나, 고운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오.
열심히 부르는 노래 속으로 혼을 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몇 해전에 만났던 어느 전자공장 다닌다던 누나의 얼굴이 떠오르고,
공사판에서 낑낑대던 나를 보고 허허 웃던 목수 아저씨의 해맑은 웃음이 느껴져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사랑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오.
자주 만나지 않으면 잊으리라 생각했건만,
그토록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떠오르는 건,
아주 가끔씩 나누던 몇 마디가 자꾸만 믿음의 고리로 이어졌던거요.

내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겁이 나거나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가 아니오.
뚜렷하게 노동하는 것 없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말하기 싫었고,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진솔한 사랑이 담겨진
그런 단어가 생각날 때에 주저 없이 말하고 싶어서 였소.

내가 지금 이 순간 편지를 쓰는 것은 그녀에 대해 어떤 기대도 갖지 않으려는 나의 되뇌임이라오.
무대 위에 선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왠지 낯설기도 했지만,
나에게 그녀가 애인이든, 친구이든, 그냥 아는 사람으로 남아 있든 관계치 않소.
그 관계에서 잉태되는 서로의 진솔한 삶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오.

평생의 과정 속에서 순간의 만남이 가져다 준 하나의 체험은 충분한 선물이었소.
이제 그녀는 나의 잊을 수 없는 벗이 되었소.

                            1994. 5. 7 새벽 3시
                                    박 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