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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워 읽는 편지

 

나에겐 밤새워 읽는 편지가 있다.

모두가 잠들었으리라 여겨지는 밤이면 난 조용히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잠들었을 때 보다 무엇인가 의식할 때 더욱 느껴지듯이

조용히 몰입되는 그 읽음 속에서 조금씩 나의 외로움을 건져낸다.

작은 시인이 써서 보낸 그 편지는 어둡고 추운 밤을

고요하고 아늑하게 바꾸어 놓곤 한다.

아무것도 없는 듯 검게 칠해진 편지지의 네모진 공간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은빛의 글 자국을 찾는다.

붉은 빛깔의 겉봉투는 이미 사라지고,

내 손아귀에 비스듬히 걸친 편지지만 작게 떨고 있다.

나의 삶을 향하여 그대가 써놓은 이 편지 속에서

나는 끝없이 반복되는 사랑, 무너지지 않는 순결, 그리고

갈라지지 않는 서로의 우정을 읽었다.

어떨 때는 눈가에 맺힌 수정 구슬 속으로, 어떨 때는 입가에 살짝 핀 주름살

사이로 나의 답장을 보내곤 했지.....

 

지금 나에겐 다시 밤새워 읽는 편지가 있다. 나는 조용히,

편지를 읽기 위해 가만히 눈을 감는다.

1991. 9. 22
박 해 정